
인생에서 같은 영화를 극장에서 두 번 본 건 처음이었습니다. 첫 번째는 순수하게 내용이 궁금해서였고, 두 번째는 무대인사를 보고 싶어서 다시 예매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 다 보고 나서야 비로소 이 영화가 단순한 액션 수사물이 아니라는 걸 확신하게 됐습니다.
박선우라는 인물, 정의의 사도인가 나르시시스트인가
솔직히 처음 박선우를 봤을 때는 '범죄자만 골라 죽이는 다크 히어로' 정도로 읽혔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그 해석이 완전히 흔들렸습니다. 그가 죽이는 대상이 점점 '가해자'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사람들로 옮겨가기 때문입니다.
배우 정해인은 박선우를 나르시시즘(narcissism)과 소시오패시(sociopathy)가 결합된 인물로 직접 표현했습니다. 나르시시즘이란 자기 자신을 과도하게 중심에 놓고 타인을 도구로 인식하는 성향을 말하고, 소시오패시란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고 규범을 내면화하지 못한 채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성격 특성을 의미합니다. 이 두 가지를 조합해 보면 박선우가 정의를 실현하려는 게 아니라, 살인 자체에서 쾌락과 관심을 얻는 인물에 가깝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습니다.
류승완 감독도 이 부분을 명확히 짚었습니다. 박선우가 서도철의 아들 우진에게 접근한 것은 진심 어린 우정이 아니라, 일 중독에 가까운 서도철의 유일한 약점을 확보하기 위한 계산이었다고 밝혔습니다. 처음에 나눈 대화를 녹음한 것도, 결국 서도철을 이용해 언젠가 '해치' 혐의를 뒤집어씌울 도구를 마련해두는 포석이었던 셈입니다.
무대인사에서 실물로 본 정해인은 화면 속 박선우와 너무 달랐습니다. 얼굴이 작고 비율이 좋아서 그냥 편안하게 웃고 있는데도 괜히 배우 아닐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스크린에서 저렇게 차갑고 섬뜩한 눈빛을 만들어낸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캐스팅 자체가 정말 영리한 선택이었다 싶었습니다. 기존 이미지가 선하고 순수한 쪽이었기 때문에, 그 낙차가 오히려 박선우를 더 불편하게 만들어줬습니다.
박선우 캐릭터를 분석할 때 참고할 수 있는 지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 살인의 동기가 정의 실현이 아닌 관심 욕구와 자기 쾌락에 가깝다
- 해치라는 이름은 박선우 본인이 만든 게 아니라 대중과 사이버 레카(온라인 클릭 수익을 목적으로 자극적 콘텐츠를 생산하는 집단)가 만들어낸 프레임이다
- 경찰직을 택한 이유도 정의감보다는 '합법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직업'으로서의 이점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서도철의 성장, 그리고 시즌3가 기대되는 이유
제가 이 영화를 두 번 봐야겠다고 결심한 데는 서도철이라는 캐릭터의 변화도 한몫했습니다. 전작을 본 분들이라면 기억하겠지만, 서도철은 1편에서 아들이 다른 아이들을 폭행하고 다닌다는 걸 알면서도 크게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정작 본인은 권력과 폭력에 절대 굴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가까운 곳의 폭력에는 둔감했던 거죠.
9년 만에 돌아온 2편에서 우진은 학교폭력 피해자가 되어 있습니다. 가해자였던 아이가 피해자가 됐다는 설정이 단순한 반전이 아니라, 서도철이 그동안 무엇을 놓쳤는지를 직접 가리키는 서사 장치인 셈입니다. 방문도 열어주지 않는 아들 앞에서 서도철은 더 이상 '통쾌하게 나쁜 놈을 두들겨 패는 아저씨'만으로는 존재할 수 없게 됩니다.
감독이 결말에서 가장 공들인 장면이 서도철이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장면이라고 밝힌 건 그래서 이해가 됩니다. 사과라는 행위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책임 귀인(attribution of responsibility), 즉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미친 영향을 인식하고 그것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과정입니다. 어른이 먼저 무릎을 꿇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 한 마디에 영화 전체의 무게가 실려 있었습니다.
약을 묘사하는 방식도 전작과 달라진 부분이 눈에 띄었습니다. 1편에서 약은 고급 호텔과 화려한 파티와 엮여 있어 일종의 상류층 문화처럼 그려진 면이 있었습니다. 2편에서는 반대로 마약 중독자(substance use disorder)들의 처절한 몰락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마약 중독이란 신경전달물질 도파민(dopamine) 회로를 반복적으로 자극하면서 뇌의 보상 체계를 교란시켜 자제력을 잃게 만드는 상태입니다. 영화가 그 끝에 있는 인간의 모습을 최대한 추하고 처절하게 묘사한 것은 어떤 메시지보다 강력한 경고였습니다.
마약 문제와 관련해 국내 통계를 보면, 2023년 검거된 마약사범 수는 2만 7,000명을 넘어서며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습니다(출처: 대검찰청). 영화 속 장면이 단순히 자극적인 연출이 아니라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는 점에서, 류승완 감독의 선택은 꽤 의미 있는 시도였습니다.
쿠키 영상에서 박선우가 무기징역 이후 탈출하는 장면이 나오면서 시즌3 가능성이 사실상 확정됐고, 감독 본인도 "남겨진 명확한 이야기가 있다"며 3편에 대한 의지를 밝혔습니다(출처: 씨네21). 감독에 따르면 3편에서는 해치의 탄생 배경을 다룰 예정이며, 1편의 주요 인물이 직접 연관될 것이라고 합니다. 조태오와의 연결 가능성도 충분히 열려 있다고 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하는 건 서도철과 박선우 두 사람의 관계가 3편에서 어떤 식으로 다시 얽히느냐입니다. 2편에서 둘의 대결은 어느 한쪽이 완전히 끝난 느낌이 아니었고, 그 여운이 꽤 오래 남았습니다. 셀카를 같이 찍지 못한 아쉬움은 아직도 있지만, 3편 무대인사라는 기회가 생긴다면 다시 한번 도전해볼 생각입니다.
베테랑 2는 전작의 카타르시스를 그대로 기대한다면 조금 다르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서도철이라는 인물이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지, 박선우라는 빌런이 왜 불편하게 느껴지는지를 천천히 곱씹어보면, 이 시리즈가 단순한 액션 시리즈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극장에서 두 번 봤던 저도 글을 쓰면서 다시 보고 싶어졌을 정도입니다. 시즌3가 나온다면, 이번에는 좀 더 앞자리를 잡아두려고 합니다.